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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가장 빠르게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강원도.

인구유출로 빈집, 폐교 등 유휴공간 문제를 시각예술과 공간재생의 융합으로 해결하겠다는 야심 찬 국제 미술 프로젝트, '강원국제예술제'가 2019년 5월 대중에 발표되며 한차례 이목을 끌었습니다.

지난 10월 강원국제예술제의 두 번째 국제 예술행사인 ‘강원키즈트리엔날레2020’이 홍천에 있는 군유휴시설 구.탄약정비공장과 폐교 와동분교, 근대문화유산 홍천미술관에서 18일간 열렸습니다. 11개국 110명 작가 참여, 그중 어린이 작가는 51명, 총 방문객은 1만 3,859명, 온라인 VR전시관 방문자는 7,650명, 온라인 아트스쿨 채널 조회수는 32,520회, 노출수 19만 뷰까지! 연신 대기록을 세우며 온ㆍ오프라인 모두에서 흥행을 거두었다는 평가입니다. 


위드 코로나, 코로나 블루로 일상의 모습이 사라진 요즘. 서로를 경계하고 스스로를 단속해야 하는 불안과 단절의 시대에 어린이 축제를 개최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여정이 아니었을 겁니다. 극한의 어려움 가운데에서 어린이들에게 상상과 자아실현, 치유와 행복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뚝심 있게 추진한 국내 유일의 키즈 트리엔날레의 성공이 더욱 빛을 발하는 이유입니다.  

그 험난한 여정, 그 첫걸음을 과감하게 뗀 한젬마 예술감독을 만났습니다. 
대중에게 베스트셀러 ‘그림 읽어주는 여자’의 작가로 친숙한 그는 국내 첫 국제 어린이 미술축제(3년 주기)의 총감독을 맡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어린이가 행복한 축제, 함께 방문한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제로 마칠 수 있어 감사하다”고 연신 환한 미소를 보입니다. 

단절의 시대에 상호 연결과 확장을 통해 현재 극복을 논하고, 어린이를 위한 교육적이고 실직적인 미술을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담고자 했다는 한 감독. 인터뷰 내내 그의 당찬 목소리에 담긴 어린이와 강원도를 향한 열정과 기대가 사뭇 오랫동안 잔잔히 여운으로 남았습니다. 그가 말해준 푸르른 연결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Q. 강원키즈트리엔날레2020이 성황리에 폐막했습니다. 소감이 어떠세요?

기분이 사뭇 다르네요.
와동분교는 정말 시골이에요. 시골 중에서도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깡(?) 시골. 이곳에 사람들을 오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동안 밤잠을 못 이뤘어요. 거기다 버려진 공간을 새롭게 재생시켜야 한다는 것도, 텅 빈 공간을 어떻게 빽빽하게 채워나가야 할지도 고민의 연속이었어요. 지난 4월에는 코로나19로 행사를 열지 말지 존폐위기 상황을 경험했고, 전례 없는 온ㆍ오프라인 병행 전시를 기획해야 했고, 야외 축제를 운영하니 날씨에 대한 걱정도 많았었어요. 

전시 평가에 있어 ‘아이들이 콘텐츠를 통해 얼마나 행복하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 조성에 특히 신경 썼지요. 이 부분에 있어, 만족해요. 날씨도 도와줘서 아이들이 실컷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냈어요. 준비한 모든 것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놀이터가 됐다고 봐요.

전시를 만든 사람도 기쁘고, 관람 오신 아이들과 부모님도 기쁘고... 행사에 참여한 자원봉사자 분들이 연세 드신 지역주민들이셨는데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 들은 것이 얼마만이냐며, 이번 행사를 통해 큰 힘을 얻는다는 말씀을 듣고 눈물이 났어요.  그리고 행사 기간 동안 동네 아이들이 매일 찾아왔어요. 아지트가 된 거죠. 거기서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 그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Q. 코로나19로 전시 준비 과정이 순탄치 않았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감독의 역할, 전시장 풍경도 많이 달라졌을 거라 생각돼요.  

역사 속에서 바이러스로 인해 세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읽으려고 노력했어요. 시대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죠. 코로나19로 오프라인 행사장에 올 수 있는 관람객이 제한적이게 되니까, 행사 전과 행사기간 동안 온라인 구독자를 최대한 높이는데 주력해야만 했어요. 온라인과 오프라인 콘텐츠는 완전히 다르고 다르게 접근해야 돼거든요.

예술제 유튜브 채널에 온라인 스쿨, 아트클래스, 명사 토크 등 하루 평균 4개의 방송을 모두 라이브로 진행했고, 홈페이지에는 VR전시관을 열었어요. 모든 게 축제의 연장선이었어요. 작가 설명회도 온라인으로 열었는데, 11개국 현지에서 작가들이 줌(Zoom)으로 모여 작품 설명을 했어요. 개최일에 맞춰 전 세계 미술관을 다 컨택하기도 했어요. 축하인사를 보면 네팔 미술관장, 독일 미술관장 등 세계 곳곳 유명 관장님들의 인사를 볼 수 있어요. 그걸 보면서 ‘세계가 정말 연결이 잘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비대면 상황이 지속되면, 전 세계 기자들을 모아 간담회를 열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도 확인했고요. 

사실 행사 전에 강원국제예술제 유튜브 채널에 대한 인지도가 거의 없는 상태였어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유입할 수 있을까 생각해서 고안해낸 게 참여 작가들의 MBTI 심리검사를  인터뷰 형태로 보여주는 거였어요. 최정화, 한석현 작가 등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유명 작가들을 이용했다고 볼 수 있죠. 

전시장 방문객 수에 연연하는 것은 이제 시대적으로 맞지 않다고 봐요. 그리고 이제는 개막과 폐막의 의미도 사라졌어요. 무엇을 하느냐는 행사 소비행위를 넘어섰어요. 문화 소비 개념에서 행사기간 동안에만 수익을 창출하는 옛 축제들의 모습은 더 이상 살아남기  힘들어질 거예요. 앞으로는 축제가 끝나고 나서도 전시장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활동할 수 있는 그 기반을 마련해주는 게 중요해요. 활용도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행사기간을 프리뷰 단계로 봐요. 전시가 끝나고 나서 이곳을 이끌어갈 사전행사로 말이에요.  

 

Q. 국내 최초로 '국제 어린이 트리엔날레'라는 타이틀이 붙었습니다. 어린이, 자연을 연결한 전시!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솔직한 스토리를 말씀드리면, 예술감독 지원 공모에 '자연, 환경, 평화를 품는 전시행사'라고 명시돼 있었어요. 제안서를 작성할 때, 가장 위칸 주제란을 비우고 시작했어요. 계속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거 다’하고 느낌이 와요. 그게 바로 ‘그린 커넥션(Green Connection)’이었어요. 

평소에도 그린, 초록색을 굉장히 좋아해요. 그린은 역사 속에서 고대 비너스를 상징하거나 클레오 파트라의 색으로 여겨졌었고, 중세시대에는 악마를 상징하는 색이기도 했어요. 중세 명화를 보면 악마들이 거의 다 푸르게 나와요. 곰팡이, 지옥, 음해 세계를 대변하던 색이 20세기 들어와서 갑자기 친환경, 자연을 상징하는 색이 된 거예요. 
색깔을 주제로 정하면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초록, 대지의 자연, 평화를 연결 짓다 보니, 어린아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편하게 수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제를 그린 커넥션으로 정하고 나서, 어린이 자문단을 뽑았어요. ‘그린’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전시 주체가 될 아이들에게 직접 물어봤어요. 하나같이 들판, 숲, 산, 연못, 자연, 환경을 이야기했어요. 그때 다시 확신이 들었죠. 주제를 진짜 잘 정했구나! 저는 커넥터(Connector, 연결기)에요. 지금까지 활동을 ‘연결자’로 생각하고 해왔어요. 대중과의 연결, 제 분야와 다른 분야와의 연결... 그런 일들이요. 이번에도 어린이와 자연, 예술에 대한 연결을 잘하고 싶었어요.  

 

Q. 주제전, 특별전, 체험전으로 전시장이 세 곳으로 나눠져 있는데, 운영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굉장히 여유 있게, 쾌적하게 운영했습니다. 
예술감독은 정비를 잘해야 해요. 뭔가 하나로 통합되는 부분들과 이원적으로 분류되는 부분들을 각 전시장 상황에 맞게 빠르게 읽고 정비할 수 있어야 해요. 전시장도 전시장인데, 이번 전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하며 정비해야 한다는 점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리고 전시 운영에 있어 중점을 둔 것은 체험과 설명이었어요. 우리가 갖고 있는 주안점을 온라인 전시관, 전시장 읽어주는 예술감독 등의 온라인 방송 프로그램으로 끊임없이 설명했어요. 오프라인에서는 곳곳에 투입된 자원봉사자 분들이 전시와 작품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셨고, 마치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에게 전래동화를 이야기하듯이 설명해주셨어요. 현장 만족도가 굉장히 높아졌죠. 

 

Q. 370여 점 작품. 그중 어린이 작품이 51점. 이번 전시에 굳이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어린이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숙연해져요. 관람객들이 그 작품들을 보고 새로운 소망과 희망을 갖고 가는 게 느껴져요. 지금도 온라인 VR전시관에서 찾아볼 수 있어요. 꼭 한번 봐보세요. 

기운이 좋은 작품은 한석현 작가님의 '다시, 나무 (Reverse-Rebirth)' 작품이에요. 사실 제안서 쓸 때부터 한석현 작가님의 나무 작품을 와동분교 운동장 한가운데에 꼭 전시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근데 독일에서 활동하고 계셔서 코로나로 입국이 쉽지 않겠구나 예상했었는데, 오히려 코로나 때문에 독일에 못 가고 한국에 남게 되신 거예요. 곧바로 와동분교로 초청해서 장소를 보여드리고 예술제의 공간재생에 대해 설명드리고, 설득 끝에 나무 놀이터 작품이 탄생하게 됐어요. 재미있는 인연이에요.   

그리고 홍천미술관에 영재 한재율 어린이가 만든 퍼즐작품 ‘Green Dream’, 탄약정비공장 외벽에 그려진 김수용 작가님의 ‘또 다른 위장’ 슈퍼 그래픽 작품 등 전시장 세 곳 모두 퍼즐로 구성된 작품들을 전시했어요. 작년 강원작가전2019에 이어 이 부분은 꼭 부각하고 싶었어요. ‘작년 없는 올해가 없다!’ 과거와 현재 또 다른 커넥션 연결의 의미로 말이에요. 

 

Q. 폐교인 와동분교 전체를 어린이 예술놀이터, 교육체험장으로 재생, 부활시키셨어요. 공간 활용을 기획하셨을 때 가장 염두했던 것이 있었나요?

'정말 시골이구나' , 막상 와동분교 현장에 갔을 때 첫 느낌이었어요. 허허벌판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곳이었으니까요. 이 공간을 사람이 다시 찾는 곳으로 살려내야 하니까, 어떻게 부활시킬까를 가장 많이 생각했었어요.  전시개념이 아니라 상설 놀이터로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이전에 와동리에 있던 초등학교였다면, 이제는 대한민국의 예술학교로 새롭게 탄생시켜보고자 했어요. 공유 아트스쿨, 최초의  아트스쿨로 말이에요. 사실 국내외로 폐교를 재생한 많은 사례가 있어요. 전시를 하거나 공연을 하거나 행사를 하거나, 그렇게 가면 행사 운영을 꾸준히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생겨요. 무엇을 만들 때마다 무엇과 연결시키야 할지에 대한 어려움이 뒤따르게 되거든요. 

제가 재생 시킨 와동분교는 아무것도 없을 때에도, 주말에 와서 편히 쉬다 갈 수 있는 곳이에요. 무엇을 놓고 사람들을 모으는 것은 힘들지만, 반대로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무엇을 갖다 놓을지를 생각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어요. 그 모델을 만들기 위한 방법을 생각했고, 이번 행사를 통해 나름 모델을 제시했다고 생각해요. 

여기에 예술기획과 행정운영에 대한 지자체와의 균형이 필요한데, 지자체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은 바로 '대중'이에요. 대중이 원하는 방향을 지자체는 염두해야 하니까요. 이번 키즈 트리엔날레를 마치고 홍천군은 홍천미술관을 어린이 미술관으로 앞으로의 전시운영 방향을 전환할 계획이에요. 대중의 흐름을 읽은 거겠죠? 현대 비엔날레는 도별로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콘텐츠의 희귀성이나 용량이 많지 않아도 되지만, 횟수를 늘리지 않으면 둘 다 죽게 돼요. 반면 키즈 관련 콘텐츠 시설은 최대한 도별로 많이 생겨야 해요. 각 지역마다. 어린이 행사가 많이 생기는 것이 우리의 미래가 될 테니까요. 그렇게 보면 어린이 예술축제라는 것이 미술뿐 아니라 음악, 영화, 퍼포먼스, 댄스 등 다양한 콘텐츠로 더 키워 볼만하고, 누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 키즈 트리엔날레를 총괄하실 분도 그렇게 변화를 주었으면 좋겠어요.


Q. 앞으로 전시 기획이나, 공간재생사업 등 또 다른 계획이 있으시다면?
내년 강원국제트리엔날레는 단언컨대 어린이를 위한 배려와 감안의 비율이 상당히 자신 있게 담길 거라고 기대해요. 보통 미술제라고 하면 후다닥 어린이 프로그램을 넣으려고 애쓰는데, 아마 내년에 강원국제예술제 팀이 보여줄 전시는 가족단위 미래 어린이들이 현대 미술을 소화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과 노력과 배려가 자연스럽게 배어 들어갈 것으로 생각돼요. 올해 해봤기 때문에 쌓인 경험이 데이터로 축적되어 여느 국제 행사에 못지않은 행사가 될 거예요.

앞으로 재생공간에는 외부에서 계속 찾아오는 곳이 될 것이라 예상해요. 언제든 머무를 수 있는 곳으로 말이에요. 그리고 재단과 지자체 간에 행정과 예산이 아닌 사람이 하는 일로 생각하고 행사를 준비했으면 해요.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개인적으로 우선 충전의 시간을 가질 거예요. 
앞으로 무엇이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늘 계획대로 가지 않아도 주어진 것에 있어서는 깨어있으려 해요. 워낙 하나를 하면 올인하는 스타일이라, 기회를 잘 분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 일도 기도하면서 진행했던 것처럼 앞으로의 일도 그렇게 해나가려고요.   그리고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해요. 이번 행사에서 만난 귀한 관계들을 잘 관리해나가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한 감독으로부터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중요한 이야기를 빠뜨렸다는 다급한 목소리. 끝없는 어린이 미술에 대한 열정과 고민이 담긴 그의 마음을 마지막 글로 전하며 인터뷰를 마칩니다. 

"전시는 끝났지만, 강원키즈트리엔날레 홈페이지에 가시면 여전히 VR온라인 전시관이 열려있어요.
특히 홍천미술관 섹션에 어린이 작가들이 직접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도슨트 영상이 있어요.
어린이들이 직접 찍고 편집한 영상이에요. 정말 잘 만들어 놓았어요. 꼭 한 번 봐주세요."

 

글ㆍ사진 : 전영민 강원도청 대변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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