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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파랑이 넘실대는 동해 동호동을 찾았습니다. 
묵호항을 배경으로 왼편에 늘어선 낮은 언덕을 따라 아담하게 터를 내린 이 마을에 동해 최초이자 국내 최초 연필 테마 박물관이 생겼습니다. 이름하여 연필뮤지엄!

2017년 국토교통부 도시재생 뉴딜사업 '우리동네 살리기'에 최종 선정된 동호동은 총 160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 '책을 읽고 만드는 행복한 재생 공동체'로 변화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노후 주택, 빈집, 공터 등 정비를 마치고 4년 만에 2021년 10월 '동호지구 바닷가 책방 마을'로 재탄생을 알렸지요. 

변화의 물결에 민간 전문가도 힘을 보탰습니다. 
동해시는 마을재생사업의 지속을 위해 마을-기업 상생 기반 시설인 '파란발전소'를 마련했고, 이곳을 30년 넘게 전 세계 100여 국에서 연필을 수집한 이인기 디자이너((주)디자인소호 대표)가 '책과 연필, 새롭게 만나는 바다'를 주제로 박물관을 꾸몄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은 연필 3천여 자루를 비롯해 연필의 역사, 명사들의 연필 이야기 등 다채로운 볼거리로 가득한 연필뮤지엄. 이인기 관장과 나눈 면적 0.02㎡ 연필 속 이야기를 전합니다. 

 

 


 

Q. 안녕하세요, 관장님.
A. 반갑습니다. 편집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이인기입니다. 

 

Q. 연필 박사님으로 명성이 자자하십니다. 우리나라에서 연필로 손꼽히는 분이라고요.
A. 개인적으로 30년 넘게 ‘디자인 소호’라는 수주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해외 출장도 잦고 디자인하면서 연필을 많이 사용하다 보니, 자연스레 세계 도시를 돌아다니며 구매한 연필들이 꽤 모였습니다. 30여 년 동안 100여 국가에서 연필 6천여 자루를 모았습니다. 회사가 외부에서 일을 맡기면 돌아가는 구조여서, (요즘은 많이 좋아졌지만) 갑을 관계로 일을 오래 했고,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상황 속에, 저만의 세계로 집중할 수 있던 게 연필이었나 봅니다.

연필이 육각형이나 원의 모양인데, 면적을 따진다면 0.02㎡ 정도 됩니다. 그 아주 작은 면적에 디자인이 다 다르게 보여지는 것도 저에겐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연필이 가진 나무 향, 흑연 향의 매력에도 푹 빠졌구요. (웃음)

 


Q. 연필을 수집하는데 관장님만의 특별한 방식이 있으신가요?

A.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연필이라는 전체를 수집하는 방법. 또 다른 하나는 빈티지나 세계에 몇 안 되는 대체 가치를 생각해서 수집하는 것. 저 같은 경우는 아주 하찮은 연필, 어린아이가 쓰고 버린 연필도 그 자체 의미가 소중하니까 다양한 연필을 모으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수집은 여행이나 출장 갈 때 많이 모았습니다. 도시에 가면 중고 시장에 들렀고, 배를 타면 배 안에서 파는 연필을 빼놓지 않고 샀습니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문방구부터 갈 정도로...(웃음)

요즘엔 해외 직구도 이용하고, 회사 직원들이나 지인들이 여행을 다녀오면 연필을 줍니다. 그렇게 모은 것도 꽤 돼요. 한 400자루 정도!!! 수집을 통해 나눌 수 있고, 보여줄 수 있고, 그 속에서 자부심도 느끼고 건강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고... 그렇게 수집해왔네요.(웃음)

 

Q. 지난해 11월에 동해 최초의 박물관이자, 국내 최초 연필 테마 박물관 ‘연필뮤지엄’을 개관하셨어요. 

A. 고향이 강원도(속초)여서 묵호는 여러 번 왔던 곳입니다. 묵호가 먹 묵(墨)자를 쓰는데 올 때마다 흑연의 검은색과 굉장히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찰나, 동해시가 정부에 이곳 동호지구를 '바닷가책방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도시재생사업을 신청했단 걸 알게 됐습니다. 그때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디자이너의 위상이나 미래에 꿈 꾸는 일들이 다양하고 좀 더 깊은 생각이 있어야겠다는 필요에서 박물관을 생각했고, 동해시에 제안했습니다. 

도시재생사업 관련 공부를 시작하면서 단순히 주민들에게 엥커 시설을 만들어준 재생 사업들이 사업종료 후 상당수 낙후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박물관이 자립해 주민들과 상생하면, 지속적으로 일자리가 창출되고, 그렇게 관광객 활로가 열리고, 주변에 많은 스테이(체류 장소)들이 만들어지고, 상가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 윈윈(Win-Win) 전략을 동해시에 제안했고 동해시는 좋은 협력으로 생각하여 이렇게 박물관을 만들게 됐습니다.

사실 이곳은 책방 마을을 만들면서 파란발전소라는 브랜드로 엥커 시설로 쓰려던 곳입니다. 시설보다는 박물관으로 쓰면 좋겠다고 협의돼 용도가 박물관으로 바뀌었습니다.

국내 최초의 연필박물관이 묵호에 생겼다는 자부심이 큽니다. 

 

 

Q. 개관하기까지 어려움은 없었나요?

A. 연필을 테마로 박물관을 만든다는 상상은 주변에서 다 말렸습니다. 연필이 다양하지 못하고 크기도 작고하니까요. 연필을 하찮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사실 연필을 점점 쓰지 않은 시대잖아요.

그런데 어린아이에게 연필을 쥐여주면 바로 그림 그리고 낙서하고 장난을 칩니다. 지우기도 하고, 쓰기도 하고, 부러트리기도 하고, 깎기도 하고, 그런 즐거움을 주는 게 연필입니다. 

해외에 비해 국내는 연필을 쓰지 않는 추세가 심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사물에 대해서, 특히 없어지고 있는 사물에 대해서 한 번쯤 다시 생각할 때라 느꼈습니다.

3개 층 전시실 대부분을 버려지는 것, 하찮은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메시지, 가령 환경, 수집, 인격 발달 등의 메시지를 녹였습니다. 연필을 공부하듯이 설명하는 것보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보는 즐거움만으로도 메시지가 큰 곳을 만들려 했습니다. 

 

Q. 그럼 연필뮤지엄의 탄생 목적이 사물에 대한 의식 개선이라고 보면 되나요.

A. 연필박물관이 빈티지 위주로 전시될 수 있지만, 청소년들이 와서 연필이라는 물건, 연필이란 매개체를 봤을 때 미래 직업에 관한 생각들을 조금이나마 갖게 하고 싶었습니다. 

단순하게 연필을 구경하며 ‘여기 새로운 연필 디자인이 많아’ 이런 식이 아니라, 그들만의 멋진 직업관을 생각하게끔 유도하는 게 박물관의 큰 목적입니다. 

 

 

Q. 그래서 그런지 전시장을 둘러봤을 때 주제가 꽤 다양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A. 제가 소장하고 있는 연필 6천여 자루 중 2,500여 자루를 두 개 층에 전시해놨고, 그 연필들을 크게 3가지 테마로 나눴습니다. 

첫 번째는 박물관&기업 연필입니다. 전세계 뮤지엄에서 판매되는 연필들을 전시했습니다. 이 전시실에서 관람객들은 미술학, 박물관학 관련된 고민을 하게 됩니다.

리고 국내는 드물지만, 기업들도 자체 연필을 만듭니다. 예를 들면 삼성, 코카콜라, 스타벅스, 심지어 구찌와 같은 명품회사들도 자기 브랜드의 연필을 제작합니다. 굿즈로 홍보되는 연필을 보며 기업의 다양성과 기업들이 브랜드를 홍보할 때 작은 사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직업의 가치를 집어보게 만드는 거죠. 

두 번째는 독특한 디자인의 연필들입니다. 유무형의 연필들, 조형 연필들, 구부러진 연필 등은 창의성을 일깨워 줍니다. 창의성을 통한 발명, 다양한 생각을 만들어내는 공간입니다. 거기에 명사들이 사랑한 연필 전시를 더 했습니다. 학생들이 소설가 김훈 선생님의 연필과 글귀를 보면서, ‘나도 저분처럼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등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연필의 소중함을 잘 간직할 수 있는 빈티지 연필, 오래된 연필, 연필의 역사를 전시했습니다. 

 

 

Q. 지금 인터뷰하고 있는 4층 카페 전망이 정말 좋네요. 건너편으로 보이는 묵호등대랑 논골담길 절경이 멋집니다.
A. 카페 이름이 ‘해당화가 곱게 핀’ 입니다. 주말에 관람객, 관광객들로 찹니다. 주중에는 한 두 분씩 앉아있다가 가시고요. 제가 생각하기에도 한 두 시간 멍때리고 가기에 정말 좋은 공간입니다. 특히 요즘같이 바쁜 시기에, 날씨 좋을 때 묵호등대와 바다를 바라보면 더욱 좋겠지요. 앞으로 이곳에 미니 책방도 들어설 예정이고, 스테들러 관련 회사와 협의해 체험공간으로 활용하려합니다.  

 


Q. 또 다른 계획이 있나요?

A. 수익사업이 아니더라도 연필이 주는 목적, 지식, 교육과 관련하여 나눔을 할 수 있는 사업들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전시와 더불어 체험, 교육사업, 그리고 주민들과 함께하는 굿즈생산을 기획 중입니다.

전시는 기획 테마로 돌릴 예정입니다. 올 하반기부터는 빨간색 연필만 전시하고, 내년 초에는 빈티지 연필을 전시하고, 계속해서 박물관을 찾아와 색다른 연필을 만나볼 수 있게 전시할 계획입니다.

 


Q. 마지막으로 동트는 강원 독자들에게 한 말씀 전해주세요. 
A. ‘연필은 교육이다’ ‘연필은 지식이다’ ‘연필은 마음의 수양이다’ 이러한 개념으로 온가족이 오셔서 관람하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강원도 전체가 멋진 곳이고 발전했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중에서도 동해 묵호를 생각해주시고, 많이 홍보해주시고 상생해주셨으면 합니다. 

 

 

글 전영민_강원도청 대변인실
사진 박상운_강원도청 대변인실

문의
파란발전소 연필뮤지엄. 발한로 183-6. www.pencilmuseum.co.kr. 033-532-1010.
운영시간 : 10:00~18:00 (매주 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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