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紙 千年 絹 五百
지·천년·견·오백
종이는 천년,
비단은 오백년 동안
남아 있는다.
처음과 끝을 해낼 수 있다면, 그것도 청년과 중년이 지나도록 어떤 하나를 오롯하게 완성해 내었다면 그것처럼 축복받은 일도 없을 것입니다.
소위 ‘응팔 세대’ 전후를 지나온 이들이 지역 문화라는 언저리를 이십년이 넘도록 지켜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인내의 시간을 견뎌냈다는 증거임을 아마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분들도 격하게 동감할 듯합니다.
깊어가는 가을, 모처럼 영하로 떨어진 기온에 쌀쌀함이 도시를 휘감았던 지난 11월22일 원주한지테마파크에서 이런 삶을 온전히 살아내어 마침내 수장의 자리에 서게 된 이를 만났습니다.
김 진희 (사)한지개발원 이사장.
기억하기로 첫 만남은 아마도 90년 중반으로 벌써 24~5년전입니다. 천주교 원주교구건물 지하에서 저녁 7시 정도에 열렸던 시민 교실이 인연이 되었습니다. 시민이라는 단어가 화두가 되던 시대였지요. 당시 ‘지역 문화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한지문화제 태동을 실현시키며 이창복 이사장과 함께 동고동락한지 20년. 그 세월을 뒤로하고 이제 세대교체라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된 그. 이날 오후 예정됐던 이•취임식을 목전에 두고도 오전 내내 귀한 시간을 내어 취임의 변을 들려주었습니다.
Q. 축하드립니다. 격세지감이시겠습니다…….
“축하할 일 아녜요. 절대적인 위로가 필요해요. 사실 전이사장님이 그만하겠다고 언급하신지는 벌써 몇 년 되었는데 결국 여기까지 왔네요. 생소한 일이 아닌데도 참 두렵네요. 이창복 이사장님의 그늘을 벗어나 온전히 책임을 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사실 며칠 동안 밤잠을 설쳤네요. 그동안 이 선경 대표와 같이 상임이사로 계속 이 일을 해왔음에도 새삼 참 고민이 됩니다. 이제 20대도 아닌데...... 이젠 좀 편하게 살고 싶고 그래도 되는 나이 아닌가 싶은데……. 그러면서도 또 예전처럼 열정과 헌신으로 해나갈 수 있을 까하는 하는 그런 생각이요.”
Q. 사실 굉장히 긴 시간 이예요. 다른 일도 잠깐 하신적도 있으시지요?
“네. 명함이 바뀌었었지요. 하지만 그때도 계속 이사로서 남아있었어요. 아시다시피 이쪽 분야의 인력 구조가 사람이 귀하잖아요? 그 덕이었지요, 뭐. 그러니 어떤 면에서는 완전히 손을 놓은 적은 없다고 봐야지요? 그 시간이 참 행복했어요. 이 선경 대표(시작부터 지금까지 같은 길을 걸어온, 한지문화연대 공동대표이자 원주 시민연대 대표)와 단 둘이 산티아고를 걸어도 봤고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고, 부모님께 효도라는 것도 좀 해보고 했지요. 그러다가 오사카 문화제에 참여하게 되면서 17년1월1일부터 상근 출근을 다시 했네요!”
Q. 20년만의 세대교체이니 지역에서 기대하는 바도 있을 듯 합니다만.
“세대교체라……. 그런 것 보다는 이제껏 원주 한지가 우리 지역의 가치라는 것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면 이제는 원주 한지가 시민들의 삶에 공유되는 그런 문화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원주 한지의 역사를 알게 되고 또 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한지에 밀착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을 해나가는 것을 우선으로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을 기록하는 일에 두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 동안 한지와 관련된 사람들을 양성하고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데 주력했다면 이제는 테마 파크를 거점으로 지역 문화유산이 되도록 토양을 만들어 갈 때라고 봅니다. 원주한지문화제를 처음 시작할 때 언젠가 만들어질 테마파크를 꿈꾸었고 어려운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공간이 만들어졌으니까요. 그때처럼 초심으로 돌아가서 이제 먼 훗날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를 생각하고 큰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Q. 원주한지는 지금 어디쯤 머무르고 있다고 평가하시는지요?
“여기 테마파크 연평균 이용객이 65,000명입니다. 적은 편은 아니거든요. 원주를 방문하는 외지인들이 꼭 들립니다.(당일에도 전통문화 체험으로 한지 만들기 코너에 참여한 외국인 투어 방문단이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이 외지인들예요. 오히려 지역 주민들이 덜 찾아오는 편이지요. 복합문화공간으로, 주민들이 이곳을 휴식공간으로 자주 찾도록 만드는 일이 아직도 제일 고민되는 부분입니다. 한지하면 모든 것이 이뤄지는 그런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랄까요”
Q. 한지를 주제로 복합공간을 만들고자 한다면 이 일에 종사하는 분들이 많아져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 부분은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봐요. 공예 작가들도 상주하고요. 또 원주시에는 옻한지산업 활성화를 위한 전담팀도 있거든요. 이미 한지하면 원주를 떠올릴 정도로 전국적인 브랜드 가치를 생성했다고 판단합니다. 이제는 후광효과가 경제적 가치로 이어져갈 단계인데 그리하려면 산업화가 과제인거지요. 사실 원주는 손으로 뜨는 종이를 만드는 곳인데 전국에 열다섯 개가 있고 두개가 원주가 있어요. 분포도로만 보면 낮은편은 아니거든요. 다만 대량 생산이 이뤄지는 제조, 즉 현대화된 생산 시설이 없는 거지요. 산업의 거점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 부분이 선행돼야 하는 데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 부분은 원주시민들이 의지가 모아져야 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Q. 앞으로 중점적으로 해나갈 일들도 그런 방향이 될까요?
“우선은 성급하게 무엇을 하기 보다는 일보 전진을 위해 과거를 천천히 돌아볼 참입니다. 그래서 해왔던 일들을 정리해 보는 중입니다. 일차 정리는 마쳤습니다. 이번에 발행한 기록집도 그 한편입니다만 그 토대위에서 중장기 비전을 세워 보려고요. 보다 큰 그림을 제시하는 일, 거기 까지가 제가 할 일이지 않을까. 그렇게 마음먹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2020년이 분수령이 되지 않을 까 합니다. 당장 내년에는 공예가들이 공간이 없어서 다른 곳에서 전시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지 마음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원 사업 확대를 목표를 세웠고요. 꾸준히 해왔던 일이긴 합니다만 교육기관과 함께 원주 한지의 역사가 조금 더 깊게 다뤄질 수 있도록 하는 일들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사업, 공예가들이나 한지 관련 종사자들의 네트워크를 만들면서 후대가 나아갈 방향을 설립해 나가는 것. 그렇게 뚜벅뚜벅 걸어가면 되지 않을 까 합니다.”
이날 오후 개최된 이•취임식에서 이 선경 대표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촬영을 하며 현장을 기록하더군요. 혹시라도 미진한 구석이 있을까 뒤편에서 이것저것 챙겨가며 직원들을 독려하더니 이 전이사장의 이임사 때에는 결국 흐르는 눈물을 미처 감추지 못했습니다. 연신 훔쳐내는 와중에도 김 이사장의 취임사에는 허리를 곧추세웠습니다.
그 모습이 참 따뜻해 보여서 그래서 또 울컥했습니다.
지난했던 오랜 시간들을 우정으로 지켜가며 남긴 그들의 헌신이 가슴에 스며들어서.
그래서일까. 그날 되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쌀쌀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이들이 건재하는 한 원주한지의 또 다른 도약을 꿈꿔봄직하단 생각에........
글•사진 : 조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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